전생 이야기
그대는 명종 14년, 한 양반 가문의 서자(庶子)로 태어났소. 그대의 아버지는 정실 부인이 있었으나, 그대의 어머니는 첩이었소. 신분 때문에 그대는 태어날 때부터 뜻 한 곳으로 가지 못했소. 양반의 자식이었으나 양반이 아니었고, 평민도 아니었소. 다섯 살에 그대는 글을 배웠고, 열 살에는 의서(醫書)에 흥미를 가졌소. 신분 때문에 과거를 볼 수 없었던 그대에게 의술은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었소. 그대는 의서를 미친 듯이 읽었소. 『황제내경』, 『상한론』, 『본초강목』 — 그 모든 것을. 열다섯이 되던 해, 그대는 한 명의(名醫)의 문하로 들어갔소. 거기서 그대는 침과 뜸, 약초와 진맥을 배웠소. 스승은 그대의 재능을 한 번에 알아보았소. 그러나 동시에 말했소. "재능이 큰 의원은 자기 재능에 빠지기 쉽다. 너는 그것을 경계해라." 스물에 그대는 자신의 의술을 펼치기 시작했소. 신분이 낮아 정식 의관이 되지 못했으나, 백성들 사이에서 그대의 이름이 알려졌소. 그대는 가난한 자도 정성을 다해 봤소. 약값을 못 내는 자에게는 약초를 직접 캐서 주었소. 부유한 자에게서 받은 사례로 가난한 자를 도왔소. 서른에 그대는 마침내 궁중의 의관이 되었소. 신분의 벽을 학식과 의술로 뚫은 것이오. 그곳에서 그대는 임금의 가족을 진료하기 시작했소. 그러나 그대는 변하지 않았소. 궁궐 밖에서 가난한 환자가 그대를 찾으면, 그대는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소. 마흔이 되던 해, 임금이 그대에게 큰 임무를 맡겼소. 모든 의서를 정리하고 새로운 의서를 편찬하라는 것이었소. 그것이 후일 『동의보감』이 되었소. 그대는 십 년을 그 작업에 매달렸소. 매일 새벽부터 밤까지, 그대의 손에서 한 권 한 권의 책이 나왔소. 쉰이 되던 해, 임진왜란이 일어났소. 임금이 의주로 피란할 때, 그대도 함께 갔소. 다른 의관들은 모두 도망쳤으나, 그대는 끝까지 임금 곁에 있었소. 그것은 그대의 충(忠)이었소. 그러나 그대의 진짜 충은 다른 곳에 있었소. 피란 중에 그대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환자를 봤소. 임금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순이 되던 해, 임금이 세상을 떠났소. 그대는 임금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졌고, 유배되었소. 그러나 그대는 유배 생활 중에도 의서를 썼소. 유배지의 산기슭에서, 그대는 매일 약초를 캤고, 매일 책을 썼소. 『동의보감』의 마지막 부분은 그 유배지에서 완성되었소. 예순셋이 되던 해, 그대는 유배에서 풀려났소. 그대의 책이 마침내 임금에게 닿았기 때문이오. 새 임금이 그대의 책을 보고 감탄했소. 그대는 다시 한양으로 돌아왔소. 그러나 그대의 몸은 이미 늙었소. 일흔이 되던 해, 그대는 마지막 작업을 했소. 『동의보감』을 25권으로 정리하는 것이었소. 그것은 단순한 의서가 아니라,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건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책이었소. 그대는 의술이 단순히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소. 일흔여섯이 되던 어느 가을, 그대는 평소처럼 환자를 보다가 자신의 약방에서 떠났소. 그대의 손에는 마지막 처방전이 쥐어져 있었소. 그것은 한 가난한 늙은 어머니를 위한 것이었소. 그대의 책 — 『동의보감』 — 은 후일 조선뿐 아니라 명나라와 일본에까지 전해졌소. 그것은 동아시아 의학의 한 정점이 되었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되었소. 그러나 그대는 자신의 책이 그렇게 되리라 알지 못했소. 그대는 다만 환자를 살리고 싶었을 뿐이었소. 병자의 고통을 내 것으로 여길 때, 비로소 의원이다 — 그것이 그대의 평생이었소. 그대는 단순한 명의가 아니었소. 그대는 인술(仁術)의 화신이었소. 그대의 영혼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아픈 한 사람의 곁에 조용히 서 있을 것이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