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이야기
그대는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 해, 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소. 가문은 전쟁으로 가족 절반을 잃었고, 그대의 어머니는 그 슬픔으로 몸이 약해지셨소. 그대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그대 곁을 떠났소. 그날 밤, 그대는 처음으로 죽음을 보았고, 처음으로 무상함을 느꼈소. 열 살 즈음, 그대는 자주 산을 올랐소. 마을 뒤 작은 산 위 암자에 노승이 한 분 살았는데, 그대는 그곳에 가는 것을 좋아했소. 노승은 말이 없었으나, 그대가 곁에 앉으면 차 한 잔을 내어 주었소. 그 침묵 속에서 그대는 무엇인가가 풀리는 것을 느꼈소. 사람의 말로는 풀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그대는 어린 나이에 알았소. 열다섯, 그대의 아버지가 또 한 번 혼인을 했소. 새 어머니는 좋은 분이었으나, 그대의 마음은 이미 산에 가 있었소. 열일곱이 되던 해 봄, 그대는 아버지께 큰절을 올리고 집을 떠났소.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었소. 노승이 그대의 스승이 되었소. 스무 살이 되기 전에, 그대는 천 권의 경전을 읽었소. 화엄경, 법화경, 금강경 — 그대는 그 안에서 어머니의 죽음의 의미를 찾으려 했소. 그러나 답은 책 속에 없었소. 답은 좌선(坐禪) 속에 있었소. 그대는 매일 새벽 좌선을 시작했소. 처음에는 마음이 시끄러웠으나, 시간이 지나며 그대의 안에 깊은 우물 같은 고요가 생겼소. 서른 즈음, 그대의 스승이 입적하셨소. 마지막 날 밤, 스승은 그대를 불러 차 한 잔을 내어 주셨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그것이 스승의 마지막 말씀이었소. 그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날 다 깨닫지는 못했으나, 스승의 떠난 자리에서 그것을 평생 묵상했소. 마흔 즈음, 그대는 작은 사찰의 주지가 되었소. 사찰은 깊은 산속에 있어 오는 사람이 적었으나, 그대는 매일 새벽 예불을 올렸소. 종소리가 산에 울려 퍼지면, 산 자체가 응답했소. 그대는 거기서 깨달았소. 부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산속에, 종소리 속에, 그대의 호흡 속에 있다는 것을. 쉰이 되던 해, 한 젊은이가 그대의 사찰을 찾아왔소. 부모를 잃고 길을 잃은 청년이었소. 그대는 그를 받아들였고, 그를 가르쳤소. 그 청년의 눈에서 그대는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보았소. 시간이 강물처럼 흐른다는 것을, 그대는 그제야 깊이 느꼈소. 예순여섯의 어느 새벽, 그대는 평소처럼 좌선을 시작했소. 그 자세 그대로, 그대는 떠났소. 제자들이 발견했을 때, 그대의 얼굴은 평온했소. 마치 잠든 듯, 마치 미소 짓는 듯. 좌선 자세 그대로 입적하는 것을 좌탈입망(坐脫立亡)이라 했소. 그것은 깊이 수행한 자만이 이를 수 있는 경지였소. 다비식 날, 그대의 사리가 발견되었소. 작고 단단한 구슬 같은 것들이었소. 제자들은 그것을 모셔 작은 탑을 세웠소. 그 탑은 지금도 어느 산속에 조용히 서 있소. 그대는 산속에서 평생을 보냈소. 그러나 그대는 산에 갇힌 것이 아니라, 산을 통해 우주에 닿았소. 그대의 영혼은 종소리처럼, 바람처럼,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소. 그것이 그대가 평생 추구한 것이었고, 마침내 이른 곳이었소.




